[이지 돋보기] ‘쩐의 전쟁’ 재개발·재건축사업, 입찰보증금 ‘1000억+a’…건설사 “생태계 교란” 푸념
[이지 돋보기] ‘쩐의 전쟁’ 재개발·재건축사업, 입찰보증금 ‘1000억+a’…건설사 “생태계 교란” 푸념
  • 정재훈 기자
  • 승인 2020.01.0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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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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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 정재훈 기자 = 재개발·재건축 입찰보증금이 ‘1000억+a시대’에 돌입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입찰보증금액 문턱을 높이는 것은 일종의 옥석(시공사) 가리기다. 요구 조건을 모두 들어줄 수 있는 즉, 실탄이 넉넉한지 따져보겠다는 것. 자금사정이 빠듯한 건설사는 애초부터 낙오되는 구조다. 이에 ‘을’ 입장인 건설사들이 “생태계 교란”이라는 푸념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갑을 구조가 보다 선명해지고, 이른바 ‘쩐의 전쟁’으로 변질된 것은 관련 사업 수주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에 정비물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입찰보증금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입찰보증금은 입찰참가자에게 보증금을 미리 내도록 해 낙찰자가 계약 체결을 거절할 경우, 보증금을 몰수해 부실업자의 응찰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입찰보증금이 지나치게 과도하게 책정되며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시공사 선정에 나선 서울 은평구 갈현1구역과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는 각각 1000억원, 1500억원을 내야 했다.

지방도 크게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500억원은 예삿일이다. 실제 광주 최대어로 꼽힌 풍향구역 재개발 조합은 입찰보증금을 700억원이나 내걸었다. 또 최근 부산 문현1구역 재개발 역시 입찰보증금 400억원을, 대전 장대B구역 재개발은 입찰보증금 200억원을 현금 또는 입찰이행보증보험증권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정비사업 입찰보증금 문턱이 높아지면서 건설사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자금 여력이 있는 대형 건설사들은 그나마 낫지만 중견 건설사들은 중·대형 사업에 얼씬도 못하게 된 것.

더욱이 현장설명회에 입찰보증금 일부를 납부하는데 이 금액도 커지고 있다. 통상 1억~5억원 수준이었지만 한남3구역과 갈현1구역의 경우, 현장설명회 참가에 각각 25억원, 50억원을 책정했다.

건설사들은 현장설명회를 통해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조건을 확인해 입찰여부를 검토하는데 정확한 사업조건도 모른 채 현장설명회에 수십억원을 내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익명을 원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조합의 힘이 세지면서 입찰보증금에 거품이 너무 심하게 낀 것”이라며 “물론 옥석을 가리기 위한 조합원들의 선택은 존중하지만 너무 과도하게 올라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꼬집었다.

사진=뉴시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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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

입찰보증금은 공사비 10% 이내에서 책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예컨대 1000억원 규모 공사 계약을 체결하면 100억원, 1조원 규모의 공사 계약이라면 1000억원 이내가 되는 셈이다. 갈현1구역과 한남3구역의 공사비(갈현1구역 약 9200억원, 한남3구역 약 1조8000억원)를 감안하면 입찰보증금은 범위권에 있다.

그러나 과거 건설사들은 대개 입찰보증금으로 100억원 내외 수준의 돈을 투입하면 됐다. 때문에 사업 규모가 커도 입찰 시 지금처럼 부담이 되는 건 아니었다. 지난 몇 년간 컨소시엄 사업 비중이 커 입찰보증금을 줄일 수 있는 영향도 있었다.

실제 지난 2016년 인천 부평구 청천2구역 재개발 사업의 경우, 입찰보증금이 100억원으로 책정됐다. 이 사업은 총 5190세대의 대규모 단지로 공사비는 약 7500억원 수준이었다. 공사비는 갈현1구역(약 920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입찰보증금은 10분의 1에 불과했다. 인천과 서울이라는 지역 차이를 감안해도 꽤 큰 차이다.

또 지난해 초 대우건설이 수주한 서울 성북구 장위6구역 정비사업의 경우 총 공사비는 3200억원 수준이었지만 입찰보증금은 150억원, 공사비의 5% 수준으로 책정됐다.

갑(甲)의 횡포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정비사업의 쪼그라들면서 건설사간의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고 조합의 입김은 더 세진 것. 건설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건설사가 입찰보증금을 낮춰달라고 요청해도 소용없다는 전언이다.

더 큰 문제는 건설사들이 천문학적인 입찰보증금을 내고 시공권을 따내도 입찰보증금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조합들이 설계변경, 사업 장기화 등의 이유로 시공사 교체 등을 진행하고 있어서다.

현대건설은 갈현1구역 시공사 입찰 무효와 함께 입찰 제한이 됐고 이와 함께 1000억원의 입찰보증금을 몰수당할 위기에 처했다. 현대건설은 현재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자칫 패소한다면 입찰보증금은 조합에 귀속된다. 2018년 달성한 영업이익(약 8400억원)의 8분의 1 수준을 한 번에 날릴 수도 있다. 나중에 돌려받게 되더라도 1000억원에 대한 이자 금액 등에 대한 분쟁이 생길 수 있다.

한남3구역의 경우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특별점검 결과, 시공사 재입찰로 방향을 틀었지만 현대건설, 대림산업, GS건설이 낸 4500억원(각사 1500억원)의 입찰보증금 문제가 남아있다. 업계에서는 입찰보증금 몰수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밖에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역시 지난달 23일 시공사 선정 취소안이 가결되면서 500억원의 입찰보증금을 놓고 조합과 HDC현대산업개발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고됐다.

입찰보증금은 조합과 건설사가 원만한 계약을 진행하기 위한 것인데 그 규모가 커지면서 무게 추가 한쪽으로 기우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조합은 입찰보증금, 이자 등의 수익을 올리고 건설사는 자칫 잘못하면 막대한 손해를 입는 구조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입찰보증금이 너무 높게 책정된 가운데 이와 관련 문제가 잇따라 터지면서 입찰보증금이 합리적인 것이냐는 의문이 든다”라며 “입찰보증금을 아끼고 추후 피해 규모를 줄이려면 어쩔 수 없이 컨소시엄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입찰보증금은 전액 현금으로 하지 않고 보증서를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건설사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면서도 “민간 계약인 만큼 양측이 협의를 통해 그 규모를 줄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재훈 기자 kkaedol07@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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