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돋보기] 건설가, 해외서 콧노래 불렀는데…거대 암초 ‘코로나19‧유가’에 분위기 급랭
[이지 돋보기] 건설가, 해외서 콧노래 불렀는데…거대 암초 ‘코로나19‧유가’에 분위기 급랭
  • 정재훈 기자
  • 승인 2020.03.2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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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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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 정재훈 기자 = 건설업계가 경자년 새해 벽두 잇딴 수주로 콧노래를 불렀던 해외시장에서 거대 암초와 부딪혔다.

코로나19 여파로 국제사회 국경이 잠기면서 위기를 맞았고, 유가 전쟁 후폭풍에 좌초 직전 위기에 내몰린 것.

사우디아라비아 등 대부분의 중동 국가는 유가가 하락하면 국가 재정이 악화돼 기존에 예정된 프로젝트의 발주를 뒤로 미루거나 아예 취소할 수 있다.

더욱이 사우디와 러시아의 ‘치킨게임’이 장기국면으로 접어들 것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동 지역이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 텃밭인 것 감안할 때 올 한해 농사를 그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건설과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뉴욕상업거래소(NYMEX)는 지난 18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4월 인도분을 전날보다 배럴당 24.4%(6.58달러) 주저앉은 20.37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지난 2002년 이후 약 18년 만의 최저수준이다. 보통 업계에서는 원유가격이 50달러 선을 유지해야 중동 주요 지역의 공사 발주가 활발하게 돌아간다는 분석이다.

국제유가 폭락은 먼저 코로나19 사태 직격탄을 맞은 영향이다. 코로나19가 글로벌 경제에 강한 충격을 줬고 이는 곧 원유 수요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우디와 러시아의 자존심 대결이 본격적으로 판을 더 키우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이달 초 감산 합의에 실패한 이후 가격 인하와 증산 계획을 밝히며 석유 전쟁에 돌입해 유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등도 ‘치킨게임’에 합세했다.

건설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동에서 계획·추진 중인 상당수의 사업이 증발해버릴 가능성이 커진 것. 중동 주요 국가의 주머니 사정이 유가 하락으로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비전 2030’, 아랍에미리트의 ‘Energy Strategy 2050’ 등 중동 국가의 굵직한 중장기 프로젝트의 주요 사업의 경우, 오랫동안 공들여온 만큼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는 대거 연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상황에 따라 기존 사업의 공사 진행이나 공사비 수령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해외 사업을 하는 건설사들은 코로나19 사태보다 국제유가 하락이 주는 피해가 더 클 것”이라며 “코로나19의 경우, 화상회의 등을 통해서라도 수주할 가능성이 있지만 ‘치킨게임’으로 인한 발주 물량 감소는 다른 문제다. 올 한해 해외 사업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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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건설사들은 3월 20일 현재 95억7600만 달러를 해외에서 거둬들였다. 전년 같은 기간 41억3900만 달러보다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는 중동발 수주가 막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설사들은 해외 수주 총액 약 95억 달러 중 57억 달러를 중동의 오일머니로 채웠다. 전체 해외 수주액의 60% 비중이다.

범위를 넓혀 해외 수주액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전체 해외 수주액 중 중동 비중은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80% 수준에 달했다.

반면 건설업계는 유가가 급락했던 2008년과 2014년에 암흑기를 맞았다. 당시 주요 건설사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그만큼 유가와 해외(중동) 수주는 밀접한 관계다.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익명을 원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마다 상황이 달라 획일화할 수는 없지만 과거 유가가 크게 떨어졌을 당시 중동 수주에 차질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유가 하락으로 인한 중동 지역의 수주 감소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치킨게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전망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최악의 경우 유가가 10달러대까지 하락하고 감산을 불러올 것이라고 점쳤다.

일각에서는 저유가가 지속되면 재정 여력이 없는 일부 산유국의 신용등급 하락까지 예상할 정도다.

이 책임연구원은 “국가 간 자존심 싸움이지만 전쟁하듯이 할 수 없어 적당한 선에서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합의가 3개월 혹은 6개월 내로 끝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라며 “예정된 발주 물량은 물론이고 향후 계획된 물량까지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당분간 중동은 수주 가뭄에 시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설업은 발주가 있어야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업종이다. 발주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때문에 ‘치킨게임’ 소용돌이에 휘말린 지금 상황을 자력으로 헤쳐 나갈 여력이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중장기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익명을 원한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과거 유가 급락, 아랍의 봄 사태 등을 비춰봤을 때 지금 당장은 어려움이 따르겠으나 사태가 진정되면 올 하반기나 내년에 발주 물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 연구원은 “중동 지역의 상황이 심각하지만 모든 프로젝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요 사업 수주에 공을 들이면서 대응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정재훈 기자 kkaedol07@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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