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자자를 위한 상품은 없다
[기자수첩] 투자자를 위한 상품은 없다
  • 정석규 기자
  • 승인 2023.10.2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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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정석규 기자] 첫 직장을 구했을 무렵 부모님의 권유로 펀드를 들러 은행을 찾았다. 은행원은 '요즘 제일 많이 드는 펀드'라며 특정 상품을 추천했다. 놀랍게도 그 펀드의 2년 수익률은 마이너스였다. 돈을 까먹는 펀드를 왜 추천하냐고 물었지만 은행원은 "다들 드는 펀드에요"라며 추천을 반복할 뿐이었다.

'제2의 월급'을 표방하며 형형색색의 상품이 나오는 세상이다. 나스닥 지수 ETF, 원유 선물거래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금융사는 언제나 좋은 투자처가 될 거라 광고하지만 그 상품이 또 하나의 수입이 될 지, 월급을 먹는 블랙홀이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금융사들은 투자자가 아닌 회사 수익을 위해 상품을 설계한다. 5대 금융사를 비롯한 수많은 금융사들에는 저마다 커리어를 보유한 금융 전문가들이 모여있다.

전문가들은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유망한 분야를 골라 금융상품을 설계한다. 높은 인건비를 비롯해 상품 운용에도 만만찮은 비용이 들지만 금융사는 기꺼이 감수한다. 그 비용으로 탄생한 금융상품의 수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설계와 운용은 금융사가 하지만 들어가는 돈은 투자자의 돈이다. 수익이 떨어지면 손해도 투자자가 보게 된다. 금융사는 상품 수익률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 거래가 많을 수록 수수료가 늘어날 뿐, 투자자의 손익을 책임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 금융상품인 펀드만 봐도 그렇다. 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일반공모펀드의 판매보수는 0.70%로 미국에 비해 15배나 높았다.

판매보수는 말 그대로 판매 서비스에 대한 비용이다. 우리나라의 펀드 판매보수는 금융사가 일괄적으로 결정한다. 펀드 매니저는 같은 클래스의 펀드를 팔면 같은 양의 보수를 받을 뿐이다.

고객에게 추가로 자문을 한다고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기에 펀드 매니저는 고객보단 회사에 도움이 되는 펀드를 파는 게 낫다. 도의적 책임을 논하기 전에 전문가들이 고객의 돈을 불려줄 요인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맡긴 채 가만히 기다리면 남들이 자기 돈을 불려줄거란 생각은 순진한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최우선 목표는 금융사 수익 증진이지 투자자 수익 극대화가 아니다. 그들에게 월급을 주는 곳은 금융사지 투자자가 아니지 않은가.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투자는 온전히 자기 책임이다. 물가상승률보다 수익이 낮은 예적금을 제외하면 리스크 없는 금융상품은 없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금융상품의 리스크와 리턴을 스스로 파악해야 한다. 주식을 사려면 최소한 DART에 나온 사업보고서는 읽어봐야 하고, 펀드에 돈을 맡기려면 자산 보유 비중, 펀드 매니저의 실적, 수수료 비율은 당연히 살펴봐야 한다.

이 정도 준비도 없이 자기 돈을 남에게 맡긴다면 언제고 '다들 드는 마이너스 펀드'에 돈을 빠뜨릴 수도 있다. 뒤늦게 손해를 보전해달라고 피켓을 들어도 호소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석규 기자 news@ezyeconom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