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쏠림 심화...가계자산 64% 부동산 집중·익스포저 4137조원
주담대 위험가중치 15→20% 상향, 비상장주식 400→250% 완화
국민성장펀드로 AI·반도체 등 첨단산업 지원, 지역경제 활성화 추진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금융당국이 부동산 중심의 자금 흐름을 첨단산업·지역경제로 전환하는 ‘생산적 금융 대전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주도하는 이번 정책은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과 함께 은행권 자본규제 합리화를 통해 금융의 근본적 역할 변화를 추구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생산적 금융에 대한 문제 제기는 2016년 말부터 시작됐다. 당시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자금이 시장에 대량 유입되자 여윳돈들이 재건축 시장과 수익형 부동산 투자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신호순 전 한국은행 금융안정국장은 “금융기관의 담보 위주 대출 관행, 회사채 시장에서의 신용 차별화가 심화하고 있는 현상은 담보력이 부족한 신생기업 및 기술기업 등에 대한 자금 공급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위가 19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개최한 ‘제1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부동산 자금 쏠림 현상은 현재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가계 자산의 64%가 부동산으로 구성돼 OECD 평균인 52.9%를 크게 상회하고 있으며, 부동산 부문에 공급된 금융권 자금은 2024년 기준 약 4137조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는 2015년 1934조원에서 시작해 2017년 2750조원, 2019년 3445조원, 2021년 3713조원을 거쳐 2023년 3921조원, 2024년 4137조원으로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회의에서 “담보대출 등 손쉬운 이자수익을 추구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우리 금융이 담보대출 위주의 손쉬운 방식에 치중하면서 부동산 쏠림과 가계부채 누적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다 적극적으로 위험을 감내하면서 우리나라 미래를 견인할 생산적 영역으로 자금을 중개할 수 있도록 바꿔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생산적 금융 대전환 방향은 ▲정책금융 전환 ▲금융회사 전환 ▲자본시장 전환 등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먼저 정책금융 전환은 미래 전략산업, 벤처기업, 지역경제 중심으로 자금 공급 구조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범부처 역량을 집결해 5년간 150조원 이상 규모로 조성될 국민성장펀드가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국민성장펀드는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과 민간·국민·금융권 자금 75조원으로 구성되며 직접지분투자, 간접투자(펀드), 인프라투자, 초저리대출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지원할 예정이다. 지원 대상 산업은 AI, 반도체, 바이오, 미래차, 방산,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콘텐츠 등 첨단전략 및 성장 가능 산업으로 설정됐다.

금융회사 전환 부문에서는 은행과 보험사의 자본규제 합리화가 핵심이다. 내부등급법 기준 주담대의 위험가중치 하한을 기존 15%에서 20%로 상향 조정해 부동산 쏠림을 줄이고 은행 자본 여력 확보를 유도한다. 금융위는 이러한 조치를 통해 연간 최대 27조원 규모의 주담대가 축소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주식 보유 관련 위험가중치는 대폭 완화된다. 기존 원칙적으로 400%였던 비상장주식 위험가중치를 글로벌 BIS 기준을 반영해 250%로 낮춘다. 다만 다만 3년 미만 단기매매 목적의 비상장주식과 벤처캐피탈에는 예외적으로 400%를 적용한다. 이로 인해 은행권의 자본비율이 평균 24bp 상승하고, 기업대출 여력이 31조600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금융당국은 분석했다.

자본시장 전환 부문에서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와 토큰증권(STO) 등 새로운 제도 도입이 추진된다. 스타트업과 혁신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을 확대하고, 증권사의 모험자본 역할을 강화하며 IPO·코스닥 시장 활성화 등이 주요 과제로 설정됐다. 특히 대형 증권사의 모험자본 공급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과거 정책의 한계로는 위험가중치 인하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부실 리스크와 수익성 문제로 중소기업 대출 확대에 소극적이었던 점이 지적된다. 또 당시에는 규제 완화에만 초점을 둬 정책 펀드나 직접 지원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문제도 있었다.

이런 지적에 따라 이번 정부의 생산적 금융 대전환은 150조원 국민성장펀드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즉각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어 이번 생산적 금융 대전환에서 가장 핵심은 국민성장펀드”라며 “금융사의 자발적인 참여가 아니라 정책금융이 마중물 역할을 하면서 민간 자금이 따라붙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산업계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국민성장펀드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메가프로젝트 발굴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관계부처 간 통합 패키지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첨단 산업 경쟁력 강화, 벤처 스케일업,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의 목표 효과를 추구한다.

보험업권에 대해서는 IFRS17과 K-ICS 도입 이후 보수적 위험 측정 방식을 개선하고, 자산-부채 현금흐름 매칭 조정 지원 방안을 검토한다. 이는 국채 대비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대한 투자 유인을 강화하고 금리 하락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금융권에서는 모순적 규제라는 강력한 반발이 일고 있다. 은행 대출 중 가장 부실 위험이 낮아 안정 자산으로 평가받는 주담대를 위험자산으로 취급하는 것이 금융 안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국내 은행들의 주담대 연체율은 0.2~0.3% 수준으로 신용대출이나 기업대출에 비해 현저히 낮다. 담보가 확실하고 연체율이 낮아 은행 입장에서 가장 안정적인 대출 포트폴리오에 속한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주담대 위험가중치가 상향되면 위험가중자산(RWA)이 늘어나 자본비율이 하락하는데 당장 자본확충이 어려울 경우 신규 주담대 축소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건전성 유지를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기자본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생산적 금융을 어떻게 확대하라는 건지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주식 매수를 통한 벤처캐피탈 투자를 원하는 건지 지역경제 활성화를 바라는 건지 기존 기업 대출 확대를 원하는 건지 구체적 방향이 불분명하다”며 “도전적 투자의 경우 기본적인 영업 구조와 업력상 한계가 있는데 무작정 밀어붙이기엔 현실적 제약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어 “위험가중치 조정으로 균형을 맞추려면 결국 우량 담보나 고신용자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한쪽을 억제해서 다른 쪽을 유도하는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주거를 갖는데 부동산 대출은 필수적인 수단인데 제한만 계속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반면 위험자본으로 분류되는 주식투자와 벤처캐피탈 투자에 대한 위험가중치는 완화한다는 점도 논란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위험가중치 조정을 통해 위험자본 투자를 늘리려는 접근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주담대는 안전자산인데 이를 제약하면서 고위험 투자를 유도하는 것은 금융의 기본 원리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구체적인 추진 일정을 제시했다. 국민성장펀드는 올해 12월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세칙 개정을 통한 주담대 및 주식·펀드 위험가중치 관련 조정사항은 내년 1분기 중 추진될 예정이다. 보험업권 자본규제 개선 방안은 오는 10월 중 발표된다.

이억원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는 금융의 과감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며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첨단전략산업 생태계에 전례 없는 대규모 맞춤형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과거 유사한 정책들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 생산적 금융 대전환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금융권의 강력한 반발과 자본규제를 활용한 정책 추진 방식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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