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금감원 고위 간부 집단 사표, 직원 장외집회까지 조직 반발 확산
코스피 3500 근접 속 자본시장 불안 우려...경제 현안 집중 필요성 부각
금소처 기능 강화 방안 검토...소비자 보호 실질적 보완책 추진 계획 강조

금융감독원. 사진=이지경제
금융감독원. 사진=이지경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25일 국회 본회의 상정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금융감독 체계 개편 내용을 전격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 8월 13일 국정기획위원회가 금융당국 개편안을 발표한 이후 43일 만의 전면 철회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거센 반발과 야당의 필리버스터 예고, 무엇보다 경제 현안 해결에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긴급 고위당정대 협의 이후 “금융위의 정책·감독 기능을 분리하고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신설하는 내용 등을 철회하고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협의에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우상호 정무수석 등이 모두 참석했다. 

당정대의 이번 결정은 무엇보다 금융당국 내부의 극심한 동요와 저항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 조직개편안 발표 이후 기재부와 금융위에 이어 금감원까지 고위 간부들의 집단 사표 제출 사태가 벌어졌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 23일 부원장 3명과 부원장보 8명 등 현직 임원 11명 전원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했고, 전원이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취임 사흘 만에 1급 간부 4명을 전원 불러 사표 제출을 요구했으며, 기재부 역시 1급 간부 전원에게 사표를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기재부의 경우 1급 간부 일부가 경제정책 및 국제금융 등 핵심 업무를 맡고 있어 일괄 사표를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간부진 교체와 함께 일반 직원들의 집단 저항도 거세졌다. 금감원 직원들은 24일 17년 만에 처음으로 장외집회에 나서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와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경찰 추산 1500명, 자체 추산 1800명이 참석했으며 이는 금감원 직원 전체 2600명의 절반을 훌쩍 넘는 규모였다. 금융위의 경우 집단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내부 게시판 등을 통해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치적 차원에서는 국민의힘의 강력한 반발이 당정대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힘이 충분한 협의 없이 이뤄진 정부조직 개편에 전면 반대하며 이날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에 필리버스터를 예고했다.

민주당은 당초 본회의에서 기재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하고, 금융위를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하는 방안 등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금감위 설치법 등 연계 법안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방침이었다. 금감위 설치법 등 연계 법안의 소관 상임위원회가 국민의힘 소속 위원장이 이끄는 정무위원회여서 상임위 단독 심사로 처리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여당은 본회의에서 직접 패스트트랙을 지정해 법안을 수개월 뒤 처리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도 법안 통과까지 최장 330일이 소요될 수 있어 신속한 처리가 어려웠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개편안 시행 시기를 내년 1월 2일로 명시한 상황에서 후속 입법 지연은 금융당국이 수개월간 불완전한 과도기 상태에 머물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코스피 지수가 350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자본시장의 불안정성을 줄여야 한다는 현실적 고려가 작용했다. 김병욱 대통령실 정무비서관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금융 자본시장에 대한 기대가 큰데 정부 조직 개편에 필리버스터와 패스트트랙으로 수개월간 불안정한 상태를 지속하는 데 대한 무거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정애 의장은 “당과 정부, 대통령실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민생경제 회복 등 핵심 경제 현안에 집중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금융당국을 장기간 불안정한 상황에 두는 것은 경제정책 추진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금융위가 현재 주도하고 있는 주요 정책들의 추진 일정이 촘촘하게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배드뱅크 협약식은 당초 이달 12일로 예정됐다가 연기돼 10월 1일 진행될 예정이고 2단계 가상자산법은 다음 달 발표가 예정돼 있으며, 이 대통령이 최저신용자 보증부 대출 금리 개선을 촉구하면서 서민안정기금 설립에도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직개편 자체의 구조적 한계도 철회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배경으로 내세웠던 ‘감독과 정책의 분리’가 현실적으로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금융정책과 감독은 일부 영역에서 겹칠 수밖에 없어 건건이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들이 많으며, 특히 가계부채 관리나 금융소비자 보호와 같은 이슈는 정책과 감독이 동시에 작동해야 하는 영역이다. 금융정책·감독 기능이 4개 기관으로 분산되면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위기 대응능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또 재정경제부에 금융위의 국내 금융정책 기능이 통합될 경우 재경부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기재부의 예산기능 분리 과정에서 파생된 금융당국 개편안이 애초 구상보다 과도하게 확대되면서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조직개편안 발표 당시부터 야당은 물론 관련 업계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정부 내부에서도 추진 동력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당정대는 금융감독 체계 개편 방안을 철회하기로 한 만큼 국민의힘이 정부조직법에 필리버스터를 하지 말고 처리에 협조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한정애 의장은 “정부조직법에 필리버스터를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국민의힘 등 야당이 적극 협조해 정부조직법 수정안을 합의 처리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여당이 야당의 의견을 존중해 정부 조직 개편에 속도를 조절한 만큼 대결이 아닌 대화의 장으로 나와주길 촉구한다”며 야당의 협조를 거듭 요청했다. 

김병욱 정무비서관도 “정부조직법 개정을 논함에 있어 필리버스터를 하고 패스트트랙을 지정하는 불안정한 상황을 지속하는 것은 모험”이라며 “정부조직 개편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길 원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철회가 완전한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여지도 남겨뒀다. 한 의장은 금융감독 체계 개편이 전면 백지화인지, 아니면 추후 재추진하는지에 대해 “거기까지 논의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며 “추후 어떻게 진행할지는 고민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금융 소비자 보호는 금융위, 금감원 등과 논의해 긴급히 법적·제도적 장치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법률적 뒷받침이 필요한 것은 추후 후속 작업을 하겠다”고 언급해 현행 체제 하에서도 소비자보호 기능 강화는 지속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금융위가 현재 갖는 국내 금융 관련 내용을 재정경제부로 넘기려 했으나 이를 원위치 시킨다”며 금감원 공공기관화, 금융위 기능 중 일부 재정경제부 이관 등에 대해서도 “금융 관련한 내용은 현행 유지”라고 덧붙였다.

정부와 여당은 별도 기관 신설 대신 기존 금감원 내 소비자보호 부서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현재 금융민원 처리와 분쟁조정을 담당하는 금융소비자보호처가 그동안 제한적 인력과 예산으로 인해 사후 대응 위주로 운영됐다는 한계를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철회 결정을 두고 사실상 공약 철회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의 조직 개편안 가운데 금융위 등 현행 금융정책·감독 기구의 체계를 바꾸는 방안이 핵심 내용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조직개편 논란이 일단락된 점을 환영하면서도 향후 소비자보호 강화 방안이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백지화가 종결이 아니라 유예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시장 여건을 감안한 전술적 후퇴로 보이며, 향후 정치적 동력이 회복되면 재추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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