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 없이 자동 심사...중위소득 60% 이하 전액 소각, 내년부터 본격 조정
은행권 “출연 부담 과중” 반발...금융당국 “민생회복 위한 사회적 연대 필요”
7년 기준선에 성실상환자 반발, 도덕적 해이 논란에 금융위 “철저히 심사”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새도약기금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새도약기금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장기 연체자들의 빚을 덜어주기 위한 새 정부의 배드뱅크 ‘새도약기금’이 1일 공식 출범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이날 서울 중구 신용회복위원회 본사에서 ‘새도약기금 출범식’을 개최하고, 10월부터 본격적인 채권 매입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번 기금을 통해 총 16조4000억원 규모의 채권이 소각되거나 조정될 예정이며,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인원은 약 113만명에 달한다.

지원 대상은 2018년 6월 19일 이전 연체가 발생한, 즉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개인 채무자다. 금융회사별 원금 합산 기준으로 계산되며, 개인사업자도 포함된다. 단 사행성·유흥업 관련 채권과 외국인 채권은 원칙적으로 제외되며 민생회복 정책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영주권자, 결혼이민자, 난민 인정자는 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채무자는 별도 신청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기금이 금융회사로부터 대상 채권을 일괄 매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조건에 해당하는 연체자라면 자동으로 심사 대상에 포함된다.

기금은 1년간 협약을 맺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순차적으로 채권을 매입한다. 이후 행정데이터를 통해 채무자의 소득과 재산 현황을 철저히 조사한 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소각 또는 채무조정을 시작할 계획이다.

채무 소각 기준은 중위소득 60% 이하로, 1인 가구 기준 월 소득 154만원 이하이면서 생계형 재산을 제외하고 회수 가능한 재산이 없는 경우에만 채무를 전액 소각해준다. 

전액 소각 대상이 되지 못하더라도 상환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원금의 30~80%를 감면받을 수 있다. 여기에 분할상환 기간은 최장 10년, 이자는 전액 면제, 상환유예 기간은 최장 3년까지 적용된다. 다만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별도 상환능력 심사 절차 없이 올해 안에 우선적으로 소각을 추진한다. 

채무자들은 금융회사가 새도약기금에 채권을 매각할 때와 상환능력 심사가 완료됐을 때 각각 개별 통지를 받게 된다. 또 새도약기금 홈페이지를 통해 본인의 채무 매입 여부, 심사 결과, 소각 여부 등을 직접 조회할 수도 있다.

새도약기금의 재원은 총 8400억원 규모다. 당초 정부와 금융권이 각각 4000억원씩 분담할 계획이었으나, 금융권 출연금이 400억원 증가하면서 전체 규모가 늘어났다.

정부는 2차 추경을 통해 4000억원을 투입했고, 금융권은 총 4400억원을 출연한다. 업권별 분담 내역을 보면 은행권이 3600억원으로 전체의 약 82%를 부담한다. 이어 여신전문금융회사 300억원,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가 각각 200억원, 저축은행이 100억원을 분담한다. 각 금융회사는 이사회 등 내부 절차를 거쳐 새도약기금의 연체채권 매입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출연금을 납입할 예정이다.

다만 은행권 내부에서는 불만이 적지 않다.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 중소·벤처기업 대출을 늘려야 하고, 포용금융 차원에서 취약계층 지원도 강화해야 하며, 동시에 주주환원을 위한 BIS비율 관리도 신경 써야 한다. 여기에 새도약기금 출연까지 더해지면서 은행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요구하는 과제들이 중첩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출연 부담이 추가된 것도 자본 건전성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새도약기금 출범을 둘러싸고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빚을 성실히 갚아온 채무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이자를 내가며 원금을 갚아온 사람들은 “왜 성실하게 갚은 사람만 바보가 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7년 미만 연체자나 이미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이용 중인 사람들 역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역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6년 11개월 연체자와 7년 연체자 사이에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느냐는 지적이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크다. 앞으로 채무자들이 ’어차피 7년만 버티면 탕감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고의적으로 연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장기 연체 시 추심 고통이 따르고, 신용 활동 제약으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의 연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반박했다.

금융위는 이러한 형평성 논란을 의식해 추가 지원 방안을 함께 내놨다. 5년 이상 연체자에 대해서는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새도약기금과 동일한 수준의 특별 채무조정을 3년간 지원한다. 5년 이상 연체자는 원금 최대 80%까지, 5년 미만 연체자는 최대 70%까지 감면받을 수 있으며, 분할상환은 최장 10년 또는 8년까지 가능하다.

또 7년 이상 연체했지만 이미 채무조정을 이행 중인 사람들을 위해서는 5000억원 규모의 저금리 대출 프로그램을 3년간 운영한다. 은행권 신용대출 수준의 금리로, 1인당 최대 15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으며 관리 연 3~4% 수준의 이자율이 적용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출범식 축사에서 “코로나19 이후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의 부채 부담이 크게 확대됐고, 민생회복 지연으로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특단의 채무조정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새도약기금은 단순히 채무를 덜어주는 제도를 넘어 장기간 빚의 굴레에 갇혀 있던 분들이 다시 경제 활동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도약의 장치”라며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애덤 스미스조차 자본주의 성립과 운영의 필수 전제로서 연대와 사회적 협력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상환능력 심사를 철저히 추진해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성실 상환자에 대한 지원도 확대해 형평성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며 “소멸시효 제도 정비, 금융회사 자체 채무조정 활성화 등을 통해 장기 부채 문제의 근본적 해결도 병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양혁승 새도약기금 대표이사는 “새도약기금은 정부의 포용금융 정책을 실현하는 핵심 수단”이라며 “국민들의 지지와 협약기관의 협력이 모일 때 비로소 재기가 가능해지고 더 건강한 사회와 지속가능한 국가 경제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전했다.

정정훈 캠코 사장도 “모든 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해 국민 신뢰를 지켜나가고, 국민들이 빚에서 벗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온전히 자립할 수 있도록 재기 지원 프로그램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금융당국은 성실 상환자들의 박탈감에 대해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성실하게 상환하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과 불만을 정부도 이해하고 공감한다면서도 누구나 장기 연체에 빠질 수도 있어 사회적 재기 지원 시스템으로서 채무조정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취약계층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고용·복지 종합 재기 지원 노력을 병행하고, 장기 연체자가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소멸시효 제도 정비와 금융회사 자체 채무조정 활성화를 포함한 종합 개선방안을 연내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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