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약품 15%로 관세선 정리…반도체 ‘대만과 동등 대우’ 확보
조선·항공·자원까지 묶은 전략 패키지…업계 “최악의 시나리오 피했다”
3500억 달러 전략투자·협력의 새 골조…韓 기업 대미 진출 확대 본격화

한미 양국이 14일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에 공식 서명, 7월부터 3개월 반 동안 이어진 한미 관세 협상이 마침표를 찍었다. 350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 MOU가 공식 서명되면서 자동차·부품, 목재, 향후 의약품 등 민감 품목의 관세가 15%로 확정됐고, 반도체도 대만과 동등한 조건을 확보했다.
한국 수출의 최대 위험 요인으로 꼽히던 ‘관세 충격’이 일단락되자, 자동차·조선·항공·바이오 업계는 “불확실성 해소”라며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단기 리스크는 제거됐지만, 투자 이행과 미국 의회 변수 등 중장기 리스크관리가 관건”이라고 평가한다.
◆ 관세 불확실성 해소…자동차·의약품 15%, 반도체는 ‘대만과 동등’
14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7월 말 관세 협상에서 큰 틀의 원칙을 세운 이후 3개월 반 만이다. 이번 합의는 투자 구조, 수익 배분, 외환시장 완충장치, 프로젝트 관리 체계를 모두 포함한 ‘완결형 패키지’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이 MOU 서명을 계기로 미국의 관세 결정이 확정되며, 한국 수출·산업계를 짓눌러 왔던 리스크가 대폭 낮아졌다.
가장 큰 변화는 관세의 상한선이 명확히 정해졌다는 점이다. 현재 부과 중인 자동차·부품 232조 관세는 15%로 확정됐고, 목재도 최대 15%로 조정된다. 내년 적용이 예고됐던 의약품 관세 역시 15% 상한이 적용된다. 그간 업계가 가장 우려했던 ‘자동차 25%+α 충격’이나 ‘의약품 20% 이상 인상’ 같은 급격한 변동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반도체 관세는 미국이 향후 대만과 체결할 합의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보장받았다. 의미는 단순한 ‘동등 대우’를 넘어, 한국이 반도체 장비·부품·전략 광물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선을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이번 협상 과정에서 새롭게 포함된 항목도 있다. 특정 항공기·부품, 철강·알루미늄·구리 등은 상호 관세가 면제됐고, 제네릭 의약품(전구체 포함)과 일부 천연자원도 관세가 철폐된다. 그간 논의조차 어려웠던 품목까지 관세 개선 범위가 확대된 것은 업계에서도 “예상 밖 성과”라는 반응이다.
◆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상업적 합리성’ 장치로 실질 리스크 최소화
전략적 투자 MOU는 2000억 달러 투자+1500억 달러 조선 협력 투자로 구성된 구조다. 핵심은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원칙이다. 한국이 부담하는 투자금이 고위험 사업에 들어가지 않도록, 미국 대통령에게 추천되는 사업은 반드시 투자 수익 회수가 가능한 프로젝트로 제한된다는 규정이 들어갔다.
또 전체 프로젝트를 묶어 관리하는 SPV(특수목적법인) 체계가 도입됐다. 이를 통해 개별 사업의 손실을 다른 사업의 수익으로 보전하는 구조를 갖춰 한국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설계했다.
투자금은 사업 진척도에 따라 연간 200억 달러 한도로 납입하는 캐피탈 콜 방식이 적용돼 외환시장 충격도 완충된다. 필요시 납입 시기·규모 조정도 가능하다.
조선 협력 투자 1500억 달러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수익 배분 없이 모든 이익이 한국 기업에 귀속되는 구조여서, K-조선의 대미 진출과 친환경 선박 프로젝트에 실질적인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 자동차·조선·항공·바이오 업계 “한숨 돌렸다”…수출 전망 ‘서서히 회복’
협상 마무리 소식에 업계에서는 일제히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조선 산업은 조선 협력 투자 1500억 달러가 포함된 점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미국 내 LNG·암모니아 연료 인프라 확대와 연계된 프로젝트가 가능해지며 “K-조선의 대미 공급망 동맹”이 현실화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항공 산업은 항공기·부품 관세 면제로 대미노선 운영 비용의 급증 우려가 일단락됐다. 항공 수요 회복 국면에서 리스크 하나가 제거된 셈이다.
자동차 업계는 232조 관세 충격이 제거되며 미국 수출 물량·투자 계획 조정에 숨통이 트였다는 입장이다. 현대차·기아는 테네시·조지아 공장 증설 계획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바이오·의약품 업계는 15% 상한 적용이 확정되며 신약·제네릭 수출 전략을 다시 정비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전구체·원료까지 관세가 정리된 점은 CMO(위탁생산) 기업에 직접적인 호재다.
◆ 남은 과제는 ‘투자 이행’과 美 의회 변수…전략적 관리 필요
다만 MOU 서명으로 모든 리스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핵심은 향후 사업 선정(2029년 1월까지)과 투자 이행 과정이다. 미국 SPV가 선정하는 프로젝트가 한국의 산업 전략과 얼마나 정합성을 이루는지, 한국 업체가 얼마나 우선 선정되는지 등이 실제 효과를 좌우한다. 미국이 ‘한국 업체 우선 선정’을 명시했지만, 이는 법적 강제조항이 아닌 만큼 지속적인 조율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변수는 미국 내부 정치 동향이다. 관세는 행정부의 결정이지만, 투자 이행·법안 통과 과정에서 의회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미국 대선 이후 견제·재조정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는 한미 간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산업·공급망 협력의 새 골격을 마련한 것”이라면서도 “향후 수년간의 정책 일관성 유지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분석한다.
◆ 대미 수출 불확실성 제거…K-산업, 포스트 관세 시대 진입
정부는 이번 합의로 자동차·의약품·반도체는 물론 목재·항공·자원·조선까지 전략산업 전반에서 불확실성을 줄였다고 평가한다. 업계 역시 “이제는 방어가 아니라 공격 전략을 다시 짤 수 있게 됐다”며 반색하고 있다.
향후 한국 정부는 ▲투자 특별법 제정 ▲특별기금 설립 ▲프로젝트 선정 절차 참여 ▲수출·진출 전략 지원 등을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한미 관세 리스크가 정리되며, 한국 산업은 ‘포스트 관세 시대’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번 MOU가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 확대와 공급망 고도화라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지가 향후 관건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국익의 범위 안에서 최적의 합의를 도출했다”며 “양국 산업 협력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