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5대 금융지주 MOU 체결로 생산적 금융 전환 본격화
공공 75조·민간 75조, AI·반도체·바이오 등 전략산업 투자 집중
금융권, 자본비율 부담·높은 규제 속 투자 확대 요구에 우려 제기

17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별관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의 성공을 위한 금융기관간 업무협약식’에서 (사진 왼쪽부터) 이찬우 NH농협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17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별관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의 성공을 위한 금융기관간 업무협약식’에서 (사진 왼쪽부터) 이찬우 NH농협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정부와 금융권이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을 본격화하며 생산적 금융으로의 역사적 전환을 선언했다.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산업은행 별관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사무국 현판식 및 업무협약식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첨단전략산업 지원을 위한 협력 의지를 다졌다. 

국민성장펀드는 공공부문 75조원과 민간부문 75조원으로 구성되며, 공공부문은 산업은행이 운용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으로 채워진다. 민간부문에서는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NH농협금융 등 5대 금융지주가 각각 10조원씩 총 50조원을 부담하기로 했다. 민간 재원의 3분의 2 이상을 금융지주가 책임지는 구조다. 이 자금은 향후 5년간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과 그 생태계 전반에 투입된다. 지원 방식은 ▲직접 지분투자 15조원 ▲간접 지분투자 35조원 ▲인프라 투융자 50조원 ▲초저리 대출 지원 50조원 등으로 구성되며 AI에 최대 30조원, 반도체 21조원, 모빌리티 15조원, 바이오 11조원 등이 배정될 전망이다.

이날 산업은행과 5대 금융지주가 체결한 업무협약은 프로젝트별 자금지원 협력뿐 아니라 전문인력 파견과 첨단전략산업 관련 정보교류를 정례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금융위는 투자 수요를 지속적으로 모집하고 기금운용심의회 추천 절차를 진행하는 한편, 금융계와 산업계 현장 의견을 반영할 소통 채널도 구축하고 있다. 다음 달 10일 산업은행법 개정안 시행일에 맞춰 첫 투자 집행이 이뤄지도록 준비 중이다.

이번 행사에서 이억원 위원장은 금융권의 변화를 강하게 주문했다. 이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금융권에서 생산적금융 대전환 계획을 밝히고 대규모 자금지원과 전담조직 신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화답하고 있지만, 시장과 국민의 평가는 아직 냉정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손쉬운 부동산 담보 위주로 막대한 규모의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고 여기고, 미래 성장동력 지원에는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다”며 “글로벌 산업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금융권, 산업계, 지역, 국민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억원 위원장은 “국민성장펀드가 규모뿐 아니라 지원 방식과 협업 체계 측면에서도 기존 산업금융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길”이라며 “기존 영업 관행과 마인드를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적극적인 투자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위험가중자산(RWA) 규제 합리화와 같은 출자부담 개선방안, 발생할 수 있는 투자실패에 대한 면책지원 등을 추진하겠다”며 “국민성장펀드를 정부와 기업, 국민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국가적 플랫폼으로 미래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금융권의 적극적 참여를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금융권 회장들도 이날 행사에서 변화 의지를 드러냈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국가 금융경제에 기여하고 우리 사회에 공헌하는 기관 이미지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은행 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은행의 역할을 고민할 때 민간에 있는 자본을 산업 자본화시키는 것이 역할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은행의 역할이 조금씩 외부로부터 비판받고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아졌다”고 짚었다. 이어 첨단산업 투자를 위해서는 전문인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며 “투자와 융자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해 현재 관련 인력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국민성장펀드 성공의 핵심이 결국 시장 정보나 현장의 목소리를 금융위, 산은, 각 은행이 얼마나 적시에 교류하느냐에 있다고 짚었다. 임 회장은 “국민성장펀드의 앵커 역할을 산은이 맡고 있다”며 “시중은행들과 긴밀한 위치에서 서로 상의하고 기업 심사 선정부터 여신 관리,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RWA 규제 혁신이 기업금융을 해나갈 때 큰 도움이 된다며, 계속 지적되는 규제에 대해 금융권의 목소리를 많이 수용해 속도감 있게 혁신하는 것이 앞으로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은 국민성장펀드가 150조원 규모로 조성돼 첨단전략산업 생태계 전반을 민관 합동으로 지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라며, 금융권이 하나의 실행축을 형성해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진 회장은 이번 협약이 정책금융과 시장 전문성이 결합된 생산적 금융 생태계 구축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이날 현판식을 통해 공식 출범한 국민성장펀드 사무국은 ▲개별 프로젝트 접수 및 예비검토 ▲산은 본체와 여타 금융기관의 공동지원 주선 ▲자금집행 및 사후관리 등 실무 전반을 총괄한다. 산은 출신 핵심 인력과 함께 민간 금융권 및 산업계 전문가를 폭넓게 채용해 사무국의 전문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산업은행은 사무국과 혁신성장금융부문 등 기존 투자 관련 조직을 묶어 국가산업성장지원그룹으로 재편하고, 전략산업 중심의 투자 기능을 강화한다.

그러나 국민성장펀드 추진 과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17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 심사 과정에서 국민성장펀드가 구체적인 사업계획 없이 예산부터 요구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요청한 내년도 국민성장펀드 조성 예산 1조원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그대로 반영됐지만, 펀드 운영 상황을 매년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부대의견이 달렸다. 이어진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서는 모든 핵심 정보가 부재하다는 지적과 함께 전액 감액 의견까지 나왔다. 결국 1조원의 예산은 보류로 결론 났고, 소소위 협상에서 최종 조정될 전망이다.

국회는 검토 보고서를 통해 금융위가 국민성장펀드의 연도별 재원조성방안, 출자계획, 산업별 지원규모 등에 대한 계획과 과거 펀드 출자분과 국민성장펀드의 운용 및 관리 성과, 회수 재원에 대해 매년 사전적·사후적으로 국회에 보고받을 수 있도록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유사한 정책금융 사업의 중복지원에 따른 비효율성과 민간 재원의 구축 우려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됐다.

5대 금융지주는 국민성장펀드 10조원 외에도 각각 대규모 생산적 금융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이 각각 110조원, NH농협금융 108조원, 하나금융 100조원, 우리금융 80조원 등 총 508조원 규모다. 각 금융지주는 생산적 금융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부동산 금융 영업조직을 축소하는 대신 기업 및 인프라금융 조직을 확대하는 조직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대출 확대에는 건전성 우려가 따른다. 올해 3분기 기준 4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53%로 2017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1개월에서 3개월 미만 연체된 요주의여신도 총 8조1676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조537억원 급증했다. 여기에 최근 환율이 1460원대로 상승하면서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증가해 RWA가 늘어나고 보통주자본비율에 하락 압력을 주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외화 RWA가 커지면서 자본비율에 압박을 받는다”며 “여기에 생산적 금융 확대까지 요구되다 보니 자본 관리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적 금융의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위험가중치가 높아 현행 규율 아래에서는 은행이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기업대출은 가계대출 대비 RWA 증가폭이 크기 때문에 기업대출 전체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낮출 수는 없어도 정부가 집중하는 혁신산업 등 업종별 조정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가 단순한 정책금융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산업 투자로 연결될지는 향후 투자 성과와 정부 지원에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향후 운영 과정과 제도적 지원 여부가 금융권의 참여와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동력을 가늠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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