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철강 등 관세 직격탄에도 총수출은 사상 최대
대만·ASEAN 중심 완충 효과 뚜렷…신흥시장이 핵심
美·中 불확실성 상존에 ‘다변화 가속’이 유일한 방파제

2026년이 한국 수출의 성장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KOTRA는 ‘美 관세 영향 및 수출시장 다변화 동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대미 의존을 낮추고 신흥시장을 확대하는 수출 다변화 전략에 주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만, ASEAN 중심으로 수출시장이 확장하면서 통상환경 불확실성 속에서도 완충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설명이다. KOTRA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다변화 가속’이 유일한 방파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한국 수출은 미국의 품목별 관세 확대와 통상환경 불확실성 속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 배경에는 ‘수출시장 다변화’라는 전략적 전환이 자리한다. 대미 의존도를 신속히 낮추고 대만·ASEAN·EU 등으로 수출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결과, 충격을 최소화하며 성장세를 이어간 것이다. 관세 공세가 이어질 내년, 한국 수출이 다시 한번 고비를 넘기기 위해 필요한 해법 또한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가 올해 한국 수출에 가장 큰 리스크로 떠올랐지만, 결과적으로 전체 수출 흐름은 흔들리지 않았다. 2025년 1~10월 수출은 5792억 달러로 역대 월 누계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미·대중 수출이 각각 53억 달러, 41억 달러 감소했음에도 전체 수출은 오히려 2.3% 늘었다. 그 배경에는 ASEAN(51억 달러↑), EU(22억 달러↑), 대만(134억 달러↑) 등 신흥시장의 급성장이 있었다.
실제 수출시장 집중도를 보여주는 허핀달-허쉬만 지수(HHI)는 올해 초 896에서 9월 791로 지속 하락했다. 특정 시장 쏠림이 완화되고 시장 포트폴리오가 넓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미국 비중은 19%에서 15% 수준까지 떨어져 ASEAN 비중(17.3%)과 유사한 구조로 변화했다. 미국의 관세 리스크가 확대된 직후인 3월부터 대미 비중이 감소했고, 자동차·철강·일반기계 등 주요 품목의 수출선이 다변화되면서 충격이 완충됐다.
올해 대미 수출의 핵심 변수는 단연 ‘품목별 관세’였다. 총 대미 수출의 76%가 관세 적용 대상이며, 이 중 절반 이상인 52%는 품목별 관세가 직접 부과된 품목이었다. 자동차(25%), 자동차부품(25%), 철강·알루미늄 및 파생상품(25~50%), 가전·기계류(50%)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14.1%↓), 일반기계(14.0%↓), 철강제품(16.1%↓), 가전(20.6%↓) 등 주요 품목의 대미 수출은 대부분 감소했다.
그러나 업종별 대응은 예상보다 빠르고 유연했다. 자동차는 중국·EU·CIS 등지로 수출선을 넓히며 총수출은 2.3% 증가했다. 일반기계는 CIS·ASEAN으로 틀어 수출 하락 폭을 최소화했고, 철강 또한 ASEAN·EU 쪽으로 비중을 재편해 관세 영향이 총수출로 전이되지 않도록 했다. 대미 비중이 높았던 가전 역시 EU·ASEAN 비중을 키우며 시장 리스크를 분산했다.
반면 관세 예외 품목은 올해 수출에서 ‘안정판’ 역할을 했다. 반도체는 대미 수요 확대(21.6%↑)와 대만(7.8%p↑), ASEAN(4.0%p↑)으로의 시장 확장 효과가 동시에 나타났다.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미국 고객사의 조기 재고 확보 수요를 자극했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맞물리며 총수출 증가(16.9%)를 견인했다.
무선통신기기(103.7%↑), 의약품(45.3%↑)도 관세 예외 또는 미국 내 규제 완화와 맞물려 대미 수출 호조가 이어졌다. 특히 의약품은 미국 중심으로 시장 집중도가 오히려 강화됐으나, 단기적으로는 총수출 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석유제품은 대미 비중이 늘었지만, 서남아 시장으로의 확장을 병행하며 집중도가 완화됐다.
다만 모든 품목이 시장 다변화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이차전지는 여전히 대미 비중이 60%를 넘어 집중도가 심화되고 있다. 배터리 공급망이 북미 중심으로 고착화되는 만큼, 향후 ‘시장 다변화’의 사각지대로 남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무선통신기기·컴퓨터(SSD)도 대미 편중이 나타나 구조적 리스크가 상존하는 품목으로 분류됐다.
정부는 최근 한미 협상을 통해 의약품·반도체의 불확실성을 일정 부분 해소했다. 의약품은 15%로 관세가 제한되고, 반도체는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조건에서 관세가 부과되기로 합의됐다. 그러나 EU의 품목별 관세 검토, 중국의 공급망 구조 변화, 미국 대선 변수 등을 감안하면, 내년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이에 따라 2026년은 수출 포트폴리오 전환의 ‘골든타임’이 될 전망이다. 대만·ASEAN·중남미·중동·CIS 등 글로벌 사우스 시장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 제조업 경기 반등, AI·데이터센터 수요 급증, K-콘텐츠 확산 등 다양한 기회 요인을 갖는다. 특히 대만은 올해 한국 수출 증가의 가장 큰 기여 시장으로 부상했으며, ASEAN은 지역 내 IT·자동차·화학·뷰티 수요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중동은 AI·반도체·에너지·도시개발 프로젝트 수요가 본격화되고, 중남미는 6억 인구의 소비시장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관세라는 외부 충격 속에서도 한국 수출이 최고 실적을 기록한 이유는 ‘수출시장 다변화’가 체질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불확실성의 파고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장 포트폴리오를 선제적으로 전개하고 신흥시장 수요를 선점한다면, 한국 수출은 다시 한번 위험을 기회로 바꿀 수 있다. 통상 리스크를 방파제 삼아 새로운 성장축을 넓혀가는 것이 지금 한국 경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해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