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한국 경제·산업계를 움직이는 파워피플 ⑥ - 허은철 GC녹십자 대표
탄탄한 가업 기반에 글로벌 감각 더한 차세대 리더
혈액제제 ‘알리글로’ 앞세워 미국·유럽 등 시장 확대
단순한 해외 진출 넘어 글로벌 제약사로 ‘비상(飛上)’

“지난 70년간 한국은 글로벌 경제 역사상 가장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이뤄냈다.” 세계은행은 ‘2024 세계개발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1인당 국민소득(GDI)이 1960년대 초반 1200달러에서 2023년 3만3000달러로 30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한국은 가열찬 기세로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이는 모든 산업 구성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이지만, 선도기업의 총수들은 한국 경제를 이끄는 선봉장이자 구심점인 만큼 그들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이지경제’에서는 [연속기획]으로 한국 경제·산업계를 움직이는 핵심 인물들을 집중 분석한다. 중공업, 화학, 에너지, 건설, 자동차, 금융, 유통, 엔터, IT, 전자, 제약, 메디컬 등 분야를 망라해 ‘키맨’들을 다루는 이 기획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조망하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허은철 GC녹십자 대표. 사진=GC녹십자
허은철 GC녹십자 대표. 사진=GC녹십자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불안정한 국내 환경에도 불구하고 양 날개로 날아오르기 시작한 GC녹십자의 견고한 힘을 믿기에 올해는 작년보다 더욱 기대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2025년 신년사에서 허은철 GC녹십자 대표는 사업 확장에 대한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약 명가에서 글로벌 바이오 혁신기업으로 자리 잡기까지 GC녹십자는 늘 새로운 도전을 이어왔다. 전통적인 혈액제제와 백신사업을 넘어 희귀질환 치료제, 신약 개발, 글로벌 시장 확대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시도하고 있는 GC녹십자의 여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탄탄한 가업 기반에 글로벌 감각 더한 국내 제약업계 차세대 리더

허은철 GC녹십자 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제약기업 GC녹십자 가문의 3세 경영인이다. 1972년 출생한 그는 국내 제약산업의 역사를 써온 허씨 가문의 일원으로 어려서부터 제약업에 대한 이해와 글로벌 경영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혀왔다.

허 대표의 조부인 고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는 ‘시멘트업계의 대부’로 불리며 사업 기반을 만들었고, 부친 고 허영섭 전 GC녹십자 회장은 우리나라 제약업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국내 최초의 유전자 재조합 B형 간염 백신을 개발하는 등 한국 바이오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허 대표는 2015년 CEO에 오른 후 11년간 GC녹십자를 이끌며 기업의 체질을 글로벌 중심으로 변화시켜왔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매우 진취적이며, 보수적인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도전적인 리더십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은 바로 면역글로불린 혈액제제 ‘알리글로’의 미국 시장 진출이다​.

GC녹십자는 10년의 도전 끝에 2023년 말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알리글로의 승인을 획득하며 국내 혈액제제 기업 최초로 북미 시장의 문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허 대표는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미국 내 혈액원 인수, 유통망 강화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높였다. 2024년을 ‘글로벌 진출 원년’으로 선언한 GC녹십자는 이제 알리글로를 필두로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GC녹십자의 글로벌 도전은 혈액제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허 대표는 희귀질환 치료제와 차세대 백신 개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정하고 다양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과 미국, 유럽의 연구기관 및 제약사와 협력해 희귀질환 치료제 및 mRNA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의 글로벌 확장에도 집중하며 러시아 및 유럽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GC녹십자가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도약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다양한 전략과 실행 과정은 단순히 국내 제약사의 해외 진출이 아니라 ‘혁신적인 글로벌 바이오기업’으로 변모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허 대표가 이끄는 GC녹십자의 도전은 한 기업의 매출 성장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 바이오산업 전체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로 인식되고 있다.

GC녹십자는 10년의 도전 끝에 2023년 미국 FDA로부터 알리글로의 승인을 획득, 국내혈액제제 기업 최초로 북미 시장의 문을 열었다.​ 사진=GC녹십자
GC녹십자는 10년의 도전 끝에 2023년 미국 FDA로부터 알리글로의 승인을 획득, 국내혈액제제 기업 최초로 북미 시장의 문을 열었다.​ 사진=GC녹십자

◆ “단순 해외 진출 넘어 글로벌 제약사로 자리매김한다”

허은철 대표는 단순한 해외 진출을 넘어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선도기업’으로 확고부동하게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의 전략은 크게 혈액제제 및 백신의 글로벌 시장 확대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및 상업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신약 개발 및 파이프라인 다각화로 요약할 수 있다.​

허 대표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혈액제제 알리글로의 미국 시장 진출이다. GC녹십자는 미국 FDA의 엄격한 규제를 통과하기 위해 10여년간 끊임없이 연구개발을 진행했고, 2023년 말 마침내 FDA의 승인을 획득했다​.

GC녹십자는 알리글로의 미국 시장 안착을 위해 미국 내 주요 보험사 및 처방급여관리업체(PBM)와 계약을 체결하고 유통 채널을 확보하는 등 전략적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내 혈액제제 시장은 16조원 규모로,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GC녹십자는 이 시장에서 매년 50% 이상의 매출 증가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ABO 홀딩스 지분을 전량 인수해 혈액원까지 확보하는 등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GC녹십자는 백신사업에서도 차세대 프리미엄 백신 개발을 목표로 글로벌 시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허 대표는 2018년 미국 시애틀에 법인 ‘큐레보(Curevo)’를 설립해 차세대 백신 개발을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 법인은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성장하는 프리미엄 백신 시장을 타겟으로 한다. 특히 고가 백신과 성인 대상 백신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허 대표가 GC녹십자의 성장 전략으로 내세우는 또 하나의 핵심 축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및 글로벌 시장 확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다. GC녹십자는 2021년 일본에서 ‘헌터라제 ICV(뇌실 투여 방식)’의 품목 허가를 획득한 데 이어, 2023년 러시아에서도 첫 품목 허가를 받았다​. 헌터증후군 환자의 약 70%가 중추신경계 손상을 동반하는 만큼, 기존 치료제가 해결하지 못했던 인지능력 저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헌터라제 ICV는 혁신적인 치료 옵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GC녹십자는 향후 유럽 및 북미 시장에서도 헌터라제 ICV의 허가를 추진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글로벌 임상 확대 및 현지 제약사와의 협업을 모색 중이다​. 

GC녹십자는 다양한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해 해외 연구기관 및 제약사와 협력하며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스페라젠과 희귀 신경질환 치료제 공동 개발 계약 체결했으며, 일본 돗토리대학교와 GM1 강글리오시드증 경구용 치료제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국 미럼 파마슈티컬스와 소아 희귀간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독점 라이선스 계약도 체결했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GC녹십자는 희귀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확대하며 글로벌 희귀의약품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허 대표는 신약 개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GC녹십자는 해외 기업 및 연구소와의 협업을 통해 혁신적인 치료제 개발을 촉진하고, 자체 R&D 역량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장 중이다​. 

그 결과 GC녹십자는 동아ST와 함께 mRNA-LNP 기반 만성염증질환 신약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기존에는 백신 개발에 집중했던 mRNA 기술을 만성질환 치료제로 확장하며 GC녹십자는 차세대 바이오의약품 개발 역량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GC녹십자 본사. 사진=GC녹십자
GC녹십자 본사. 사진=GC녹십자

◆ GC녹십자의 글로벌 도전은 현재진행형...“점유율 확대와 현지화 관건”

GC녹십자가 글로벌 시장 공략의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는 혈액제제 알리글로의 미국 시장 안착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는 단순한 허가 획득을 넘어 지속적인 시장 점유율 및 보험 적용 확대가 필요하다​.

미국 면역글로불린(IVIG) 시장은 연간 16조원 규모의 거대한 시장이지만,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이 자리 잡고 있는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기존의 강력한 플레이어들인 CSL 베링, 그리폴스, 타케다 등 대형 제약사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GC녹십자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공격적인 가격 정책, 보험 적용 확대, 유통 네트워크 강화 등의 전략이 필요하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보험사 및 처방급여관리업체(PBM)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GC녹십자는 이미 미국 주요 보험사 3곳과 PBM 6곳, GPO(의약품 구매 대행사)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를 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GC녹십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신약을 성공적으로 출시하기 위해서는 국가별 규제 대응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 FDA, 유럽 EMA(유럽의약품청) 등의 허가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GC녹십자는 알리글로를 FDA에서 승인받기까지 10년 이상이 소요됐다.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추가 보완 요청을 받았다​. 이는 향후 새로운 신약 개발 및 글로벌 허가 과정에서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헌터라제 ICV의 유럽 및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임상 데이터 확보 및 규제 대응 전략을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GC녹십자는 미국과 일본 등 일부 지역에서 신약 임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유럽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시장에서의 임상 시험 확대가 필요하다​”며 “신약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허가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현지 임상을 통해 신뢰성을 확보하고 시장 적응력을 높이는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GC녹십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지 유통망 확대와 시장 맞춤형 전략도 필수적이다. 현재 미국 자회사 GC바이오파마 USA를 통해 유통을 진행하고 있지만 보다 넓은 유통망 확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지 제약사와의 협업, 추가적인 물류 네트워크 구축 등이 요구된다. 또 미국과 유럽, 일본 등 글로벌 시장은 의료 환경과 규제, 보험 시스템이 다른 만큼 국가별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된 마케팅 및 가격 전략 역시 촘촘하게 세워야 한다.

한 제약업계 전문가는 “GC녹십자가 남은 과제들을 뚝심 있게 해결해 나간다면 국내 대표 제약사를 넘어 진정한 글로벌 바이오기업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무엇보다 허은철 대표는 탁월한 글로벌 감각과 추진력, 리더십을 겸비한 만큼 그가 이끄는 GC녹십자의 행보에 국내 제약업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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