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현장 적용되는 ‘피지컬 AI’ 기술 통해 로봇 학습능력 강화
K-휴머노이드 연합, 산학연협력으로 2030 상용화 목표 주력
글로벌 수상·생산 허브 구축 등 기술력·시장 잠재력 동시 입증

한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하드웨어를 넘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까지 아우르는 생태계 구축에 본격 나서고 있다. 로봇의 몸체를 만드는 것을 넘어 사람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며 움직이는 ‘두뇌’를 개발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는 물리 세계를 직접 감각하고 경험하며 학습하는 ‘피지컬 AI’ 기술이 핵심으로 떠오르면서다.
CJ대한통운이 최근 피지컬AI 기업 리얼월드와 손잡고 물류용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공동개발에 나선 것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은 로봇이 시각, 음성, 언어, 센서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해 행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일종의 로봇 운영체제다. CJ대한통운은 물류센터에서 발생하는 피킹, 분류, 포장 등의 작업 데이터를 제공하고 리얼월드는 이를 기반으로 로봇핸드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AI 기술을 개발한다.
특히 CJ대한통운은 시드2 라운드 지분 투자에도 참여하며 전략적 협력 관계를 공고히 했다. 이는 레인보우로보틱스, 로보티즈, 에이딘로보틱스 등 하드웨어 기업들과의 협업에 이어 소프트웨어 영역까지 확장한 것으로 물류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부 주도로 지난 4월 출범한 K-휴머노이드 연합을 통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정부, 대학, 대기업 연구기관부터 중소형 로봇 기업까지 20여개 기관이 참여한 이 연합은 2030년까지 상용형 휴머노이드 로봇 완성과 공통 AI 모듈 개발을 목표로 한다. 총괄위원장을 맡은 장병탁 투모로로보틱스 대표는 “한국은 제조업 포트폴리오가 다양하고 ICT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이며 우수한 인재도 많다”며 “이런 강점을 결합하면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은 국제 무대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에이로봇의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는 대만 이노벡스에서 오키나와 혁신상을 수상했고 일본 리조테크 엑스포에서는 최고상인 해외부문 대상을 받았다. 투모로로보틱스의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클립-RT’는 올해 국제로봇학회 학술지에 논문이 채택되며 미국, 중국,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리얼월드 역시 아마존웹서비스가 전 세계 유망 생성형 AI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AWS 글로벌 생성형 AI 스타트업 3기’에 선정되며 기술력을 검증받았다.
기술 개발과 함께 실제 산업 현장에서의 실증 작업도 활발하다. 지난 10월 대구에서 열린 국제로봇산업전에서는 에이로봇의 앨리스가 컨베이어 벨트에 물건을 올리고 이동하는 협동작업을 선보였고 관객과 주사위 대결을 통해 사람과의 상호작용 능력을 입증했다. 뉴로메카와 로보터블이 공동 개발한 서비스형 휴머노이드 ‘나미’는 세계 최초로 공개되며 참관객들에게 팝콘을 제공했다. 로보티즈의 휴머노이드는 물품 분류 작업을 시연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사람의 형상을 갖춘 휴머노이드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전시장이 K-휴머노이드 기업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AI 학습에 필수적인 데이터 생성 기술의 발전이 자리하고 있다. 엔닷라이트는 최근 에이로봇과 로봇용 3D 합성데이터 개발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텍스트나 이미지 입력만으로 CAD 데이터를 자동 생성하는 ‘트리닉스’ 기술을 보유한 엔닷라이트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필수적인 정밀 3D 합성데이터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다. 이는 로봇 AI 학습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상용화 시기를 앞당기는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지컬AI 분야가 한국이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병탁 대표는 “거대언어모델 분야는 미국 빅테크가 이미 선도하고 있고 중국도 빠르게 따라붙고 있지만 피지컬AI는 아직 어느 나라도 절대우위를 점하지 못했다”며 “피지컬AI에 유리한 산업 생태계를 갖고 있는 한국이 앞서 나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AI가 텍스트나 이미지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 세계에서 작동하고 학습하며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려면 제조업 기반과 ICT 인프라가 결합된 환경이 필수적이다.
시장 전망도 밝다. 한국의 산업용 로봇 시장은 2025년부터 2030년 사이 연평균 9%대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며 서비스 로봇 시장은 의료, 물류, 가정용 등 전방위 수요 확대로 2025~2035년 성장률이 약 15%대에 달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에 연간 3만대 규모의 로봇 생산 허브를 건립할 계획을 발표한 것도 글로벌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 한국 로봇 산업은 이제 일시적 테마가 아닌 정책 지원 기반의 기술 혁신, 산학연 연합 리더십, 글로벌 생산 및 수요 확대 기대가 맞물린 구조적 성장 스토리로 전환하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생태계 구축을 통해 한국이 피지컬 AI 분야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