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체크] 은행권, 지자체 금고 쟁탈전 후유증?…3년 간 출연금 3천억 훌쩍
[이슈 체크] 은행권, 지자체 금고 쟁탈전 후유증?…3년 간 출연금 3천억 훌쩍
  • 문룡식 기자
  • 승인 2018.01.0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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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 문룡식 기자 = 은행권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기관 금고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지난해에만 1000억원 이상의 출연금을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3년 간 기준으로는 3000억원이 넘는다.

은행권이 상당한 출혈과 법정공방 등 과열 혼탁 양상을 보이면서까지 금고 유치에 사활을 걸고 나선 것은 수조원대의 지자체 예산을 유치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반사이익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공식 출연금 외에 행사 후원 등 지원이 끊이지 않는 만큼 보다 강화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전국은행연합회에 제출된 6개(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IBK기업은행) 은행의 지난해 이익제공공시를 분석한 결과, 이들 은행이 지자체에 금고 유치와 관련 제공한 출연금(10억원 이하 제외)은 총 1151억81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은행연합회에 제출되는 이익제공공시는 은행업감독규정에 따라 은행이 업무와 관련해 거래 상대방에게 제공한 금전·물품·편익 등을 제공할 때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제공금액 합계가 10억원을 초과한 경우에만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규정돼 있어, 공시되지 않은 10억원 이하의 출연금을 포함할 경우,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별 출연금을 보면 NH농협은행이 557억2400만원으로 가장 많이 지출했다. 농협은행은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경기도와 강원도,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충청남‧북도, 제주도, 세종시 등 10곳에서 1금고를 담당하고 있다. 또 인천‧대전‧대구‧울산광역시 등 4곳에서도 2금고를 맡고 있다.

다음으로 출연금이 많은 곳은 우리은행으로 384억3800만원을 지자체 금고 업무 비용으로 사용했다. 우리은행이 맡고 있는 광역자치단체 금고는 서울시 단 1곳에 불과하지만 규모 면에서는 타 지역을 압도한다. 더욱이 2금고 이상 체제로 각각 다른 은행이 맡아 운영하는 일반 자치단체와는 달리 서울시는 100년 넘는 기간 동안 우리은행이 독점하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인천의 1금고와 경기, 강원, 충북의 2금고를 유치한 신한은행은 96억9400만원을 썼다. 이밖에도 지난해 대전 1금고 재유치에 성공한 KEB하나은행이 51억2500만원, IBK기업은행 42억원, KB국민은행은 20억원 등을 지자체에 제공했다.

지자체의 금고를 맡게 되면 해당 지역의 정부 교부금과 지방세 세입, 기금 등을 예치하고 세출과 교부 등의 출납 업무를 맡게 된다. 보통 2개 이상의 금고가 선정돼 1금고는 세입·세출 등의 일반회계를, 2금고는 특정한 세입·세출을 충당하는 특별회계와 지역 기금 관리 등을 맡는다. 현재 서울시를 제외한 모든 지자체가 2개 이상의 금고를 두고 있다.

은행권이 거액의 출연금을 제공하는 것은 지자체가 금고 선정 과정에서 출연금을 평가 기준에 반영하는 이유에서다. 출연금을 높게 제시한 은행일수록 금고에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은행권이 수백억원씩 지출하면서까지 금고지기를 자처하는 까닭은 지자체 예산을 예치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큰 탓이다. 지자체 금고 계약은 보통 3년~4년 주기로 이뤄진다.

금고로 선정되면 이 기간 동안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조원의 수신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자체 금고를 가장 많이 유치한 NH농협은행의 경우, 10개 광역지자체의 올해 예산 총 73조1000억원 중 일반회계 예산으로 편성된 63조원 가량을 맡는다. 수신 자산이 늘어난 만큼 여신이나 다른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실탄’에 여유가 생기는 것.

이밖에도 해당 지역의 ‘주거래 은행’이 되는 셈인 만큼 이미지 제고와, 공무원·지역민 등을 잠재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부대효과가 따라붙는 것이 장점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진흙탕

은행 입장에서는 지자체 금고를 늘리는 것이 워낙 매력적인 먹거리다 보니 유치에 열기를 더해가고 있지만 자칫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의 연도별 금고 출연금(10억원 이하 포함)은 2014년 1111억5000만원에서 △2015년 1332억5000만원 △2016년 1377억원 등으로 매년 늘고 있다.

또 금고 선정 결과에 대해 탈락한 은행들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심사 과정에서 비리가 발견돼 법정공방까지 가는 등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연례행사 수준이다.

실제로 전남 순천시는 지난해 11월 NH농협은행을 1금고로, KEB하나은행을 2금고로 선정했지만 이에 불복한 광주은행이 심사 과정이 불공정하다면서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광주은행은 금고 선정 과정에서 심사 결과 발표가 미뤄진 점과 채점표를 뒤늦게 수정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자체가 금고를 선정할 때는 기본적으로 행정안전부가 정한 기준을 따른다. 행안부 기준은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 안정성 △지역주민 이용 편의성 △대출 및 예금 금리 △금고업무 관리능력 △지역사회 기여 실적 및 협력사업 추진계획 등이다. 그러나 실제 심사는 지자체 자율로 이뤄지는 부분이 많아 매번 공정성과 투명성에서 논란이 생기는 경우가 잦다.

심상정 의원은 이와 관련,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공공기관 금고지정 협력사업비 운영 투명성 제고’ 권고를 제도개선 조치 했지만, 지금도 금고 계약서에 포함된 공식 출연금 외에 행사 후원 등 또 다른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면서 “보다 강화된 대책 및 철저한 이행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금고 유치 경쟁이 전보다 치열해진 것은 맞지만 과열 경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금고 유치에 관심이 적었던 시중은행이나 지방은행들이 유치에 참여해 경쟁자가 늘어나면서 출연금 규모도 증가하는 것”이라면서도 “일각에서는 ‘출혈 경쟁’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금고 유치가 은행 경영과 수익성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악화시키진 않는다”고 반박했다.


문룡식 기자 bukd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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