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2025 빅트렌드 ‘AI‘…미래 경쟁력의 핵심 - ④ 제약바이오
신약 개발 판도 뒤흔든 AI…시간·비용 획기적으로 단축
제약사, 기술 확보 총력…“AI 없이 빅파마 될 수 없다”
신약개발 강국 위해 민간·정부·연구기관 삼각공조 필수
국가바이오위원회 출범…AI 생태계 조성에 1조원 투입

AI 기술이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신약 개발에 AI 기술을 활용하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존의 신약 개발 과정은 평균 10~15년이 걸리고 1조원 이상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지만, AI를 활용하면 신약 후보 물질 탐색부터 임상시험 설계까지 전 과정이 획기적으로 단축된다. 특히 분자·단백질 간 유사성, 분자와 단백질의 관계 등을 학습한 AI가 사람이 일일이 데이터를 찾아 분석하던 작업을 자동으로 진행한다면 업무의 효율성이 향상될 수 있다.
약물 설계뿐만 아니라 유전체 등 바이오 데이터 분석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AI를 통해 수많은 바이오 데이터가 생산되고 있으며, 이 데이터로부터 신약 개발 과정에 필요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유전체 데이터는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 분석이 쉽지 않다. 인간의 단백질은 2만개 이상으로 각각의 단백질에 다양한 변이가 존재할 수 있다. AI는 유전자상 특정 변이 여부와 질병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해 질병의 원인을 찾거나 바이오마커로도 활용될 수 있다.
김화종 한국제약바이오협회 K-멜로디 사업단장은 “AI는 소프트웨어의 발달과 학습에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늘어나면서 사람의 의사결정 능력을 뛰어넘고 있다”며 “신약 개발에 필요한 여러 단계에서 AI를 도입해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검증됐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츠앤마켓츠에 따르면 이같은 효과로 인해 글로벌 AI 신약 개발 시장은 연평균 45.7%씩 성장해 2027년에는 40억340만 달러(5조8117억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AI가 신약 개발에 키워드로 떠오른 2023년 기준, AI 신약 개발 분야에 투자된 금액은 총 603억 달러(87조5556억원)로 지난 9년 동안 약 2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활용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글로벌 빅파마들은 AI 기반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대학과 연구소,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화이자는 AI를 활용해 신약 후보 물질을 빠르게 발굴하고 있으며, 노바티스와 MSD는 AI 기반 플랫폼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신약 개발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 국내 제약사 기술력 확보 총력…“AI 없으면 빅파마도 없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AI 기술을 신약 개발의 ‘황금키’로 인정하고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AI 기업 아이젠사이언스와 협업해 항암신약 개발 과정에 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적용했다. 아이젠 디스커버리 플랫폼을 활용해 전사인자 저해제 기반 항암신약 개발이 목표다.
유한양행은 AI를 활용해 항암 신약을 개발 중이며, GC셀은 NK세포치료제 개발에 AI를 접목하고 있다. 동화약품은 온코크로스, 삼진제약은 아론티어 등 전문기업과 협업해 각각 신규 항암제, 신약 후보물질 발굴을 시도하고 있다.
대웅제약과 JW중외제약은 자체 AI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웅제약은 자체 신약 개발 AI 플랫폼을 활용해 비만, 대사, 항암 등 8개 분야 후보물질 발굴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 중 최근 비만치료 후보물질을 발굴, 본격적인 신약 개발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JW중외제약은 올해 독자 데이터 사이언스 플랫폼 ‘주얼리’와 ‘클러버’를 통합한 ‘제이웨이브’를 선보였다. 웹 포털 환경에서도 AI를 활용해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에 작용하는 유효약물을 신속하게 탐색하도록 돕는다. 선도물질 최적화를 통한 신약 후보물질 발굴까지 전 주기에 걸쳐 활용할 수 있다.
LG AI연구원도 최근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차세대 단백질 구조 예측 AI’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에 돌입했다. 단백질은 인체의 모든 활동에 관여하는 대표 생체 분자 물질로, 질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신약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전 과정에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세포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빅테크들도 단백질 예측 AI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단일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설계하는 단계여서 사람 몸속에서 환경과 화학적 변화에 따라 다양한 상태로 존재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기술은 난제로 남아 있다. LG AI연구원은 백민경 교수 연구팀과 협력해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단백질 다중 상태 구조 예측 AI를 연내 개발, 신약 개발은 물론 생명 현상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는다는 계획이다.
백민경 교수는 “단백질 구조 예측에서 인공지능은 중요한 도구이지만,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며 “LG AI연구원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검증과 실험으로 이어지는 단백질 구조 예측의 새로운 단계에 도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 신약 개발 강국 도약…제약사·정부·연구기관 삼각공조 필수
AI 기술만으로 신약 개발의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AI 신약 개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 도입을 넘어선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AI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한 방대한 의료 데이터가 필수적이지만, 국내에서는 데이터 공유와 활용이 여전히 제한적이다. 병원, 연구기관, 기업 간의 데이터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AI 신약 개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AI 기반 신약 개발을 뒷받침할 전문인력 양성도 시급한 과제다. 제약바이오 분야와 AI 기술을 융합할 수 있는 인재가 부족한 현실에서, 정부와 학계는 산·학 협력을 강화해 맞춤형 교육과 연구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미국과 유럽은 AI 신약 개발을 위한 규제 기준을 마련하고, 연구 자금 지원과 정책적 뒷받침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신약 개발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법·제도 정비, 연구 지원 확대, 글로벌 협력 강화 등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김화종 K-멜로디 사업단장은 “연합학습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게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거나 지적재산권을 유출하지 않는다는 법적 해석도 필요하다”며 “글로벌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국내 데이터만으로는 한계인 만큼 글로벌 제약사와 기관도 매력을 느끼고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 국가바이오위원회 출범… AI 신약계발 생태계 조성에 1조원 투입
정부도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신약 개발 AI 구축 지원에 1조원 이상 규모의 메가펀드를 조성하는 등 제약업계 행보에 발을 맞추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3일 국가바이오위원회를 발족하고 ‘한국형 바이오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국가바이오위원회는 범부처 최상위 거버넌스로 관계 기관에서 개별 추진 중인 정책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조직이다.
정부는 우선 현재 전국에 설립되어 있는 20여개 클러스터를 ‘버추얼 플랫품’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계해 소통을 강화하고 자원을 공유하도록 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K-바이오헬스 전략센터를 중심으로 공공 임상시험수탁(CRO), 위탁개발생산(CDMO) 기능을 강화한다.
또 정바이오 산업 혁신과 더불어 바이오 안보 강화를 위해 전 주기 규제를 개편하고 생성형 AI 의료기기 허가·심사 기준 등을 마련한다. 2027년까지 바이오헬스 분야 인재 11만명을 양성하고 무형 교육을 확대해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창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은 “AI 기반 기술로 시간‧비용 등을 기존 대비 절반가량으로 단축하고 공공바이오파운드리 구축과 분야별 확산을 도모하겠다”며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