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한도 풀린 은행채, 기업 자금조달 막을까
발행한도 풀린 은행채, 기업 자금조달 막을까
  • 정석규 기자
  • 승인 2023.10.0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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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은행채 발행한도 폐지...은행채 3개월 간 4조원 넘게 순발행
은행채가 하위등급 회사채 수요 흡수...금리 상승·PF자금 경색 등 우려
은행채 발행한도가 폐지되면서 금리 상승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경제=정석규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채 발행한도를 폐지함에 따라 기업의 자금조달 통로가 막히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이달부터 은행채 발행 한도 제한을 폐지할 방침이다. 

지난해 9월 레고랜드 사태 당시 금융위원회는 채권시장이 경색되자 10월부터 초우량채인 은행채 발행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금융위는 이후 차환 목적의 은행채 발행(월별 만기 도래 물량의 100%)만 제한적으로 허용해오다가 올해 3월부터는 월별 만기 도래 물량의 125%, 지난 7월부터는 분기별 만기도래액의 125%로 발행 규모를 관리해왔다. 그러다 이달부터는 발행 한도를 아예 풀기로 한 것이다.

지난 7월부터는 분기별 만기 도래분의 125%까지 은행채 발행 한도를 완화했다. 그러나 작년 말 고금리로 판매한 예·적금 상품 만기가 도래하면서 은행권 자금 수요는 계속됐고 결국 금융 당국은 은행채 발행 한도를 아예 없애기로 한 것이다.

금융투자협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채는 4조6800억원이 순발행됐다. 은행채는 지난 8월에도 3조7794억원이 순발행되며 순발행 기조로 돌아선 상황이다.

앞서 은행채는 올해 상반기에는 5월(9595억원)을 제외하고는 상환 규모가 발행 규모보다 많은 순상환 기조를 보였다. 그러나 하반기에는 7월(-4조6711억원)을 제외하고 두 달 연속 발행액이 상환액을 앞섰다.

이처럼 최근 은행채 발행 물량이 상환 물량보다 늘어난 이유는 자금 확보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해 발생한 '레고랜드 사태' 이후 은행을 비롯해 금융권 전반에서는 자금 확보를 위해 앞다퉈 고금리 상품을 출시했다. 최근 해당 상품들의 만기가 다가오면서 다시금 수신 경쟁이 나타날 조짐이 보이는 상황이다.

은행권은 작년 말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예금금리를 연 5%대까지 높이며 수신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에 질세라 2금융권도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연 6%대 중반에 이르는 특판을 대규모로 판매했다. 

금융권은 당시 늘어난 수신 규모를 100조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100조 재유치’ 수신 경쟁을 막으려면 채권 발행 한도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4분기 은행채 발행 한도 제한 조치를 폐지하기로 했지만 은행채 발행 규모가 크지 않아 시장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고 밝혔다.

지난 7월~10월 채권종류별 발행 통계(단위 : 억원). 이미지=금융투자협회

회사채 밀어내는 은행채...구축효과 또 나타날까

우량채에 속하는 은행채 발행이 늘어나면서 비우량채인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 인기가 떨어져 기업의 자금 조달 통로가 막히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채권시장 내 우량채 증가가 기업 자금조달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점은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당시 한전채의 약진에서도 알 수 있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선언 이후 채권시장의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10월, 주요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채권(이하 한전채)가 특히 1조5900억원 발행됐다. 지난해 10월 20일 한전채의 표면금리는 연 5.9%에 달했다.

초우량 등급인 한전채가 풀리면서 당시 회사채 발행시장은 더욱 위축됐다. 지난해 9월 총 5조3438억원으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한 회사채 발행금액은 다음달인 10월 들어 1조8192억원으로 더욱 줄어들었다. 줄어든 금액만큼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에 실패한 것이다.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개월 간 은행채는 4조484억원 순발행에 성공한 반면 회사채는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1조1047억원 많았다. 

실제로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 주요 리스크 요인으로 은행채 발행 증가를 꼽는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제한되었던 은행채 발행한도도 완화돼 초우량물 발행이 단기간 집중될 경우 금리(스프레드) 상승이 예상된다”며 “시장 전반의 금리 레벨이 상승한 후 차상위 등급으로 수요가 단계적으로 이동함에 따라 하위등급 회사채 수요가 구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일각에선 2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PF 문제가 다시 떠오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 (은행채 발행의) 영향으로 단기금리가 이전 대비 올라간다면 제2금융권의 PF 상품이나 기업들의 단기자금 조달은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량 채권인 은행채와 경쟁하기 위해 다른 채권들도 금리를 높여야 하는 만큼 은행채의 발행량 증가는 시중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금리는 더 오를 가능성도 나온다. 현재 금리 상단은 7% 수준으로 현재 분위기라면 올해 말 8%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10월 이후에도 은행채 순발행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간 '만기 물량의 125%'로 묶였던 은행채 발행한도가 풀린 만큼 4분기에도 은행채 순발행 기조는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출시한 예금 상품 만기가 다가오는만큼 은행채 발행을 늘려야 하는 상황은 맞다"며 "4분기 은행채 발행량에 대해서는 시장 상황을 보고 판단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정석규 기자 news@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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