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 개미' 수난시대...이틀 간 8000억원 강제 처분
'빚투 개미' 수난시대...이틀 간 8000억원 강제 처분
  • 정석규 기자
  • 승인 2023.10.24 06: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루에 5200억원 미수금 쏟아지며 반대매매 비중 69%까지 급증
고금리·전쟁 등으로 변동성 확대...영풍제지 주가조작 의혹도 악재
코스피 지수가 급락하자 빚투 개미들의 반대매매가 줄을 잇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경제=정석규 기자] 고금리와 중동전쟁 영향으로 국내 증시가 부진한 가운데 반대매매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수가 급락하자 제때 대금을 갚지 못한 개인 투자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위탁매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금액은 5257억원이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4월 이래 가장 큰 수치다.

미수금은 1조14억원으로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도 69%에 달했는다.

미수거래는 개인이 증권사에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하는 것을 말한다. 미수금은 투자자가 미수거래 대금을 갚지 못해 발생한 소위 '외상값'이다.

투자자는 3거래일 안에 미수금을 갚아야 하는데 이를 갚지 못하면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로 청산하는 반대매매가 발생한다.

올해 들어 미수거래 반대매매 규모는 증가했지만 하루 평균 500억원대 수준이었다. 하반기 추이를 보면 반대매매 규모는 ▲7월 569억원 ▲8월 514억원 ▲9월 510억원이었다.

하지만 이달 18일 2767억원으로 급등했고 19일에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틀 동안 쏟아진 반대매매가  8024억원에 육박했다. 이는 지난해 4분기에 진행된 전체 반대매매 규모(8365억원)와 맞먹는 수준이다.

금투협 통계에는 미수거래 반대매매만 반영하고 신용거래융자 반대매매는 포함되지 않는다. 반영되지 않은 사례를 합치면 반대매매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거래융자 반대매매는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증권사로부터 대출을 받아 주식을 매매한 뒤 담보비율(약 140%)을 유지하지 못했을 때 일어난다.

이달 들어 예상보다 지수가 급락하자 상환능력을 넘어서 미수거래를 진행한 개인들에 대한 반대매매가 쏟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증시가 상승장일 때에는 담보가치가 유지되거나 올라가기 때문에 반대매매 자체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며 "이달 들어 코스닥지수가 9% 넘게 빠지면서 개별 종목도 급락하는 하락장이 지속됐고 반대매매도 함께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대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개인을 중심으로 수급이 이어졌던 종목들의 가격이 빠지다 보면 가격 조정 자체가 손절매성 매도나 반대매매를 부르고 그 반대매매 때문에 가격이 또 빠지면서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별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 통계. 이미지=금융투자협회

반대매매 규모와 비율이 사상 최고치로 뛰어오른 것은 우선 주가가 투자자의 예상과 달리 하락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15일 2601.28이었던 코스피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이달 10일 2402.58까지 200포인트(7.6%) 가까이 내렸다. 이에 주가를 단기 저점이라고 생각한 일부 투자자들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증권사로부터 대거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코스피는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이 계속되고 중동발 긴장이 고조되면서 지난 20일 오히려 올해 1월 중순 이후 최저치인 2375로 하락했다.

국내외 증시가 불안정한 점도 반대매매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주식시장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고금리에 연일 약세 압력을 받고 있어서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19일(현지시간) 5%선 위로 올라섰는데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이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코스피지수는 7개월 만에 2400선을 내주며 2375.0까지 밀려났다.

강 연구원은 "고금리 공포, 유가 상승 기조가 지속되는 대외 환경이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매력도를 낮추고 있다"며 "외국인 수급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반대매매 등 개인 수급과 관련된 지표도 부진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주가 조작에 연루된 의혹이 있는 영풍제지의 하한가로 한 증권사에서 대규모 미수금이 발생했다.

지난 18일 코스피(KOSPI)에 상장돼 있던 영풍제지가 갑작스런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후 한국거래소는 영풍제지에 대해 지난 19일부터 매매거래를 정지하고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주식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다.

지난 20일 장 마감 후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하한가로 미수금 4943억원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키움증권의 상반기 순이익 4258억원을 넘어서는 규모다.

영풍제지는 특별한 호재가 없었음에도 올 들어 7배 이상으로 주가가 뛰었다가 지난 19일 하한가를 기록했고 20일 거래가 정지됐다.

이에 투자자들이 키움증권에서 미수거래를 위해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5000억원에 가까운 미수금이 발생한 것이다.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거래가 재개되면 반대매매를 통해 미수금을 회수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경우 반대매매가 쏟아지면서 주가가 하락해 다시 반대매매를 부르는 악순환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증권가에선 키움증권의 부실한 내부 통제가 주가 조작의 빌미를 제공하고 투자자 피해를 키웠다는 말이 나온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올 초부터 7월까지 영풍제지 증거금을 100%로 올려 미수 거래를 막았다. 반면 키움증권은 미수 거래 증거금률을 40%로 유지하다가 19일에서야 100%로 올렸다.

한편 금융당국 관계자는 "주가 급락과 관련해 신속한 거래질서 정립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매매거래정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혐의 적발 시에는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중 조치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정석규 기자 news@ezyeconomy.com

관련기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동광로 88, 2F(방배동, 부운빌딩)
  • 대표전화 : 02-596-7733
  • 팩스 : 02-522-716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민이
  • ISSN 2636-0039
  • 제호 : 이지경제
  • 신문사 : 이지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237
  • 등록일 : 2010-05-13
  • 발행일 : 2010-05-13
  • 대표이사·발행인 : 이용범
  • 편집인 : 이용범, 최민이
  • 편집국장 : 임흥열
  • 이지경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지경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ezyeconomy.com
ND소프트